문부성 장학생 석사 연장에 떨어지며

오늘 저는 교토대학교 경제학교무과로부터 장학생 연장 심사 비추천 대상이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유에 대해서 경제학교무과와 유학생과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았습니다(덤으로 장학금 사인도 하고요. 안하신 분들 얼른 하세요)

제가 장학금 연장에 실패한건 딱히 페이스북에 글을 남길 정도로 어울리는 자랑도 아니고, 재미있는 내용은 더더욱 아니지만 혹시 저의 경험이 앞으로 문부성 석사 장학생까지 연장하려는 후배들, 그리고 앞으로 대학생활을 해 나갈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솔직한 글을 남깁니다.

성적 및 지원당시 상황

GPA(3점만점) : 2.76
졸업 논문 : 작성하지 않음
대학원 : 교토대학교 정보학연구과(정보 교육) 합격
추천서 : 제미(세미나)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받음

비추천의 배경(유학생과장님에게 들은 말입니다)

  1. 전반적으로 석사연장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2. 각 대학마다 정규생 연장(학사->석사 / 석사->박사)의 TO는 이미 정해져있는데 서류 심사 결과 그 TO에 들지 못했다.

  3. 추천대상자는 다양한 학부의 교수님들이 서류심사를 해서 서류 채점후 정한다. 꼭 정보학에 지원한다고 해서 지원자의 서류를 정보학 전공 교수분들만 심사하는게 아니다.

  4. 각 학교마다의 TO는 비공개

    GPA는 2.5이상이 대학원 연장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다소 여유 있는 편이었습니다. 졸업 논문은 작성하지 않았고요, 대학원은 8월말에 이미 합격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일반적인 장학금 연장학생과 다른 점이라면 저의 전공이 학부 경영학에서 석사 정보학으로 바뀐 것과 졸업 논문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 이네요(왜 졸업논문을 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래 내용에 나옵니다)

나의 학교 생활

앞서 언급했다시피 저는 원래 경영학으로 문부성에 채용된 학생이었습니다. 사실 유학에 앞서 처음 경제 경영을 정할때에도 뚜렷하게 ‘일본에서 경영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보다는 ‘막연하게 경제가 재미있어보이고 사회를 바꾸는 임팩트가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일본 생활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도일 후 행복한 외대시절을 보내며 ‘내가 왜 경영학을 골랐으며 진정 일본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게 되죠.

외대에서의 1년간 달콤한 휴식이 지나 저는 교토대학교 경제경영학과로 입학하게 됩니다. 처음 1년은 그야말로 적응기였습니다. 고등학교와는 또 다른 90분 수업이라는 압박, 1교시 등교와의 사투, 또, 부족한 일본어 덕에 수업시간에는 일본어로 듣고 한글로 노트필기하기 등등.. 그렇게 1학기는 아둥바둥 버티고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학교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교토대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학풍 덕분에 다양한 교양과목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영장류학 임상심리학 물리학 등등.. 여러가지 과목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2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경제와 경영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1학년때도 전공수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고 입문과목이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으로 단위따기’에만 급급했었죠. 가장 중요한, ‘내가 왜 경영학을 골랐으며 진정 일본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생각은 마음속 한 구석에 몰아두었습니다. 어차피 저는 이제 1학년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2학년 전공수업을 들어가니 평소에 전공이면서도 전공책 한 번 펴보지 않은 저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경제학사, 경영학, 마케팅, 금융, 조직론 등과 같은 과목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걸 배우면 어디에다가 써 먹는걸까’ ‘나는 왜 일본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었던걸까’ 그리고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뺴놓을 수 없는 ‘군대는 언제가지?’…

여기서 저는 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맙니다. 바로 이런 머리아픈 질문들은 또 마음 한켠에 두고 생활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또 막연히 생각합니다 ‘나도 다른 취직하는 선배들처럼 3학년이 끝나고 군대를 갔다와서 일본에서 취직해야겠다.’ 라고. 자신의 진로를 취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문제점은 ‘왜’라는 물음이 빠져있던거죠. 왜 나는 취직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회피한체 그냥 생활했던거 같습니다. 그저 학교 생활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학점 관리와 제미에만 몰두한 채로 말이죠.

다시 계절이 바뀌고 3학년이 되었습니다.

2학년때까지만 해도 막연했던 취직과 군대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왜’라는 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던 만큼 불안감도 컸던거 같습니다. 위기의식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본 공립중학교에서 방과후 선생님 일도 하고 많은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학교 친구들과의 독서토론모임도 제가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제미에서는 비지니스 대회에 참가하기도하고, 제미 동창회 발표에서 대표로 발표하기도 하고, 합동 프로젝트에도 참가 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인 프로그래밍과의 인연이 생활코딩이라는 사이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학교 생활 절반을 지나서,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정 하고싶은 것은 다른 곳에 있었구나’라는 것을요.

프로그래밍과의 만남

그렇게 저는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활코딩에서 처음 코딩을 배우기 전까지 전혀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컴퓨터와의 인연은 기껏해야 컴퓨터 게임 정도였고 그나마도 게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친구, 처음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이게 뭔 외계어인가 싶고 무슨 대문자 소문자 하나만 틀려도 에러가 나고 함수를 잘못만들어서 두세시간동안 틀린 부분을 찾기도 해야 하니 내가 왜 이런걸 하고 있나 자괴감들고 괴로운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와서 프로그래밍을 시작해봐야 다른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보다 훨씬 지식도 뒤쳐져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재밌으니까’ 계속 공부했습니다. 나만의 웹 사이트와 그 기능을 하나하나 만들었을때 처음으로 느껴보는 창조하는 그 손맛. 어려운 알고리즘 문제를 해결했을때의 보람. 당연하게 생각했던 컴퓨터기능의 ‘당연하지 않음’을 이해했을때의 쾌감. 이 모든것들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재미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고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물론 지금, 오늘도 그렇습니다)
하루에 한시간 하기에도 지루하고 버겁던 공부가 12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배우는 즐거움을 알고나니 그 전까지는 막연했던 나에 대한 물음들에 하나 둘 씩 가닥을 잡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던 기반은 전혀 없었지만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그래, 정보학 대학원에 가자. 할 수 있다.’

그렇게 대학교 3학년이 끝나게 됩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저때는 정말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잘 아는것도 없었는데 왜 그런 자신감이 있었을까요?

4학년이 되어서

4학년에 들어와서 저는 크게 네가지의 목표를 세웁니다.

  1. 대학원 합격 + 문부성 연장
  2. 졸업 논문 쓰기
  3. 나만의 어플리케이션 만들기
  4. 졸업하기

    막상 세우고 보니 하나하나가 참 만만치 않은 미션들이고 딱 봐도 대학교 4년중 가장 바쁜 학년이 될거라는 예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차근차근해보자는 마음으로 묵묵히 공부를 했습니다. 가장 먼저 다가온 큰 산은 대학원 시험. 여지껏 웹과 어플리케이션 만들기에만 몰두했던 저는 컴퓨터공학의 이론적인 배경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알고 있던 지식이라곤 웹이나 어플을 만들때 하나하나 배워왔던 잡다한 지식이 전부였죠.

    다행인 것은 일본 대학원 시험은 과거문(족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과거문을 보면서 공부했고 게다가 운이 좋게도 학교가 시험 과목에 대한 책을 미리 정해줘서 그 책(물론 만만치 않지만)을 다 정독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정보학과 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들을 내세워서 자기소개/연구계획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요.

    노력해서 시험을 본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합격 통지가 나올때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사부(후배지만 프로그래밍 사부라고 부르는 친구입니다.)와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전까지만해도 저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는 단순히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데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사부라는 친구는 초등학생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서 저와의 지식/경험의 차이는 극과극이었습니다. 과장안하고 그친구가 말하는 기술적인 내용의 90퍼센트를 제가 몰랐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그 친구의 오타를 고치고 네모박스 테두리 굵기를 0.5픽셀에서 0.6픽셀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 친구와 같이 컨텐츠를 기획하고, 서로가 쓴 코드에 대해서 토론하고, 하나의 기능을 통째로 다 만들정도로 많이 발전했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요.

    이렇게 장밋빛 개발을 하던 도중 저는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바로 졸업단위가 부족하다는 문제죠.

    저에게 남은 단위는 18단위 입니다(18단위 == 9과목) 4학년 후기 학생치고 절대로 적은 수의 단위가 아니죠. 사실 교토대 경제학부는 졸업논문을 쓰면 6단위를 주기 때문에 졸업논문 6단위 + 나머지 6과목수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지금하고 있는 프로그래밍이 너무 재밌고(또 바쁘고..) 출석을 해야하는 수업이 많아서 졸업논문을 쓸 시간이 없어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학부 사무실에 졸업논문이 없어도 문부성 석사 장학금연장이 가능한지 물어서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고 졸업논문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한 단위가 따기 쉬운 9과목을 듣게 되죠.

    여기서 또 다시 저는 ‘성적도 여유 있고, 당연히 석사 연장은 받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는 실수를 합니다.

    이번에는 대학원도 미리 붙어놓은 상태이고 내가 하고싶은 공부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교토대학교 장학금연장 비추천 통보를 받게 되죠.

돌아보며

사실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했던 마음도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밍이 정말 좋고, 아직은 학생으로서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유인으로는 장학금이 있었죠.

이제 장학금이라는 어쩌면 ‘일본에서 진학하는 석사’의 가장큰 유인이 사라지니 저는 더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도 ‘과연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은 연구가 주이지 배움이 주가 아니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지금 자기자신이 하는 일은 재미있나요?

왜 그런 전공을 공부 혹은 일을 하고 계신가요?

행여나 예전의 저 처럼 정말 무겁고도 중요한 이 질문을 마음 한켠으로 밀어두고 계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자기자신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하루하루 프로그래밍에 취해있던 저도 오늘 오랜만에 자기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겠습니다.

두서없이 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제 곧 저랑 사부가 만든 어플이 곧 나올 예정이니 다운로드 많이많이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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